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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유 및 향후여파

40년 역사 SVB 뱅크런에 파산

 

3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SVB의 폐쇄를 결정했다. SVB는 전날 420억 달러(약 55조6000억원)에 이르는 예금이 빠져나간 충격을 버텨내지 못했다. 40년 역사의 은행이 무너지는데 채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SVB의 폐쇄는 단일 은행으로선 2008년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미국 역사상 2번째로 큰 규모다. 

 

1983년 설립된 실리콘밸리은행이 10일 파산하며 이 은행의 자산은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로 넘어간 상태다. 공사가 보장하는 예금은 1인당 최대 25만달러(약 3억3천만원)다. 하지만 이 은행에 예금을 맡긴 고객은 ‘개인’이 아닌 스타트업 등 큰 돈을 다루는 ‘법인’이어서 예금 대부분이 이 한도 이상인 것으로 집계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 자료를 인용해 보험한도를 초과하는 예금 규모가 총 예금의 1515억달러(약 86%)라고 전했다.

 

파산 이유

초저금리 시대의 대표적 수혜자였던 SVB를 무너뜨린 건 급격한 금리 인상과 긴축 기조다. 코로나19 여파로 유동성이 넘쳐나던 시기 SVB는 ‘실리콘밸리 호황’을 타고 빠르게 덩치를 키웠다. WSJ에 따르면 SVB 모회사인 SVB파이낸셜그룹의 총자산은 2020년 말 1160억 달러에서 2021년 2110억 달러로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말 SVB는 2090억 달러 자산을 갖춘 미국 16위 은행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모래 위의 성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통화 긴축으로 방향을 틀자 돈이 궁해진 기업들은 예금 인출에 나섰다. 기업이 맡긴 돈을 돌려주기 위해 SVB는 그동안 사둔 미 국채 등을 팔아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문제는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 가격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는 것이다. Fed가 지난해 벌인 사상 초유의 4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의 여파다. 울며 겨자 먹기로 채권을 헐값에 던졌지만 몰려드는 인출 요구를 감당하긴 어려웠다. 

 

향후 여파

문제는 비슷한 처지의 은행들에 파장이 연쇄적으로 불어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주요 은행은 미국 국채를 포함해 많은 채권을 자산으로 보유 중이며, 미 Fed의 금리 인상 가속화(장기화)로 인해 손실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 은행권의 미실현 손실 규모가 이례적으로 크다는 측면에서 이번 SVB 사태가 단발성 이슈에 그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 금융당국도 “다른 은행은 양호하다”며 시장을 다독이고 나섰지만, 내부에선 대응책 마련을 놓고 고심 중이다. 12일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와 연방준비제도(Fed)가 SVB 폐쇄 이후 어려움을 겪을 은행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조성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규모 자금 인출(뱅크런)과 금융사 연쇄 파산이란 ‘최악의 시나리오’ 에 대비해 구제 금융 실시 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급격한 긴축이 불러온 파열음에 Fed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주목된다. 시장에선 당초 오는 21~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ed가 다시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금리 인상에도 미국 고용시장이 여전히 뜨겁다는 게 지표로 확인되면서다. 하지만 SVB 붕괴의 파장이 커질수록 Fed의 행보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엇갈리는 시각 속에 결국 최대 변수는 14일 발표될 소비자물가지수(CPI)로 보인다. 

 

세계 금융시장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9~10일 미 은행주의 시가총액이 1000억 달러 넘게 감소했다고 전했다. 유럽 은행들의 시장가치도 500억 달러 이상 줄었다. 암호화폐 시장도 크게 흔들려 시가총액 1위인 비트코인의 가격은 2만 달러 선이 무너졌다. 주말 문을 닫았던 증권ㆍ외환시장이 다시 열리는 13일 ‘검은 월요일’이 닥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 11일 미국 투자업계의 ‘큰손’ 빌 애크먼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정부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바로잡을 시간이 48시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불똥은 곳곳에 튀고 있다. SVB의 영국 지점이 파산을 준비한다는 소식에 현지 정보기술(IT)업체들은 11일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부 장관에 보낸 서한에서 "(SVB) 예치금 손실은 기술 부문에 심각한 손상을 주고 기업 생태계를 20년 뒤로 되돌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은행이 문을 여는 월요일(13일) 위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정부의 빠른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 줄도산 위기

미국의 정보기술(IT) 업계 매체인 <테크크런치>는 10일 “이 위기는 많은 스타트업을 죽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평균적 개인에게 25만달러는 큰 액수일 수 있지만, 임금을 줘야 하는 스타트업에겐 그렇지 않다”며 “임금은 비용 일부에 불과하다. (피해를 본 스타트업들은) 이제 어떠한 종류의 현금 사용도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 위기에 빠진 곳도 많다. 다른 스타트업에 임금지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인 ‘리플링’은 10일에 일부 임금 지급을 완료하지 못했다. 스타트업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 ‘와이 콤비네이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조사한 400개 기업 가운데 100곳 이상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향후 30일 동안 임금을 지급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은행에 자금이 묶인 업체들은 이미 현금 확보를 위한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소매업체 ‘캠프닷컴’은 사태가 터진 뒤 판매하는 제품들을 무려 40%나 할인에 나섰다. 벤 카우프만 최고경영자(CEO)는 고객들에게 전자우편으로 할인 소식을 알리며 “불행히도 우리의 현금 자산 대부분이 무너진 은행에 있었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고객인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썼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실리콘밸리은행의 갑작스러운 파산은 많은 창업자 사이에서 사업의 미래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키웠고, 거시 경제의 어려움과 자금 모집의 급격한 감소로 고군분투하던 스타트업들을 더욱 난처하게 했다”며 “지난해까지 강세장 속에서 추구했던 공격적인 성장 전략으로부터 더욱 빠르게 멀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에 영향은?

한국 정부의 움직임도 긴박해졌다. 12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 경제·금융 수장들은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거시경제·금융현안 관련 정례 간담회를 열고 SVB 사태의 국내 영향을 점검했다. 이들은 간담회 후 "이번 미국 SVB의 유동성 위기가 은행 폐쇄로 확산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아직은 이번 사태가 미국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우세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금융 긴축으로 시장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외 금융시장, 실물경제 등에 대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와 관계기관은 관련 상황을 24시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신속히 대응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부작용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