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법원 1부는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했다. 당시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지 않고 소부(小部)에서 결정된 것은 1부에 속한 김능환(주심) 이인복 안대희 박병대 대법관이 모두 배상 책임 인정에 동의했음을 뜻한다.
당시 대법원 1부가 파기환송한 사건은 재상고돼 6년 만인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해 13명이 참여해 이 중 김 대법원장과 김소영(주심) 조희대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박정화 민유숙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대법관 등 11명이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로써 판결이 확정됐다.
국가는 어찌 되건 말건 자신만 비난을 면하면 된다고 여긴 대법관 15명의 이름을 기억해 두라고 일일이 거론해봤다. 윤석열 대통령이 구상권 행사 없는 ‘제3자 변제’로 일본에 숙이고 들어가는 국치(國恥)를 자초한 책임은 윤 정부 외교 3인방이 아니라 바로 이들에게 있다.
2012년 대법원 1부 판결이 내려진 직후 이 문제에 정통한 이근관 서울대 교수 등 국제법 전문가들의 비판 논문이 쏟아졌다. 요지는 두 가지다. 첫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는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도 포함돼 있다는 게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한국 정부도 오랜 기간 일관되고 명확하게 견지해 온 견해라는 것이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체결된 대부분의 유사한 협정이 국가와 개인의 청구권을 구별하지 않고 동시에 소멸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2018년 대법원은 6년 전과 똑같은 판결을 내렸다.
한일 청구권 협정에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표현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서 위안부 합의가 따로 체결된 것은 1965년 당시에는 위안부가 현안으로 부상하지 않아 한일 간의 묵시적 합의에 의한 청구권 범위에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제징용은 그 범위에 들어 있었다. 강제징용 배상 청구권이라면 그것이 개인의 청구권이지, 국가의 청구권이겠는가. 그래서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가 대신 배상을 받았으니 피해자에게 대위(代位) 변제한다는 구상이 나왔고 그대로 실행됐다.
대법관들은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한일 간 협정을 파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외교 갈등을 초래하리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으나 정부가 알아서 하라고 던져버리고는 빌라도처럼 손을 씻었다. 그들이 지난 5년간 한일 관계의 악화를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오지(奧地) 국가에서나 나올 법한 판결을 했으니 일본 기업이 배상을 거부해도 문재인 정부 5년간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져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법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고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 대법관의 자리에까지 오른 똑똑한 사람들이 외교관계를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헝(hung)’ 상태로 만드는 판결을 내리는 바람에 결국 일본에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 부끄러워한다면 진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 2022년 3월 22일 동아일보 컬럼 일부
박근혜 정부 양승태 대법원장 재판거래 정황
양승태 2018년 8월경에는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직 당시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을 갖고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하려 했다는 정황이 발견되었다.
대법원은 2013년 7월 환송후 원심인 서울고법 민사19부가 대법원 환송 판결의 취지대로 여씨 등 원고들에게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이후에도 5년 넘게 재상고심 심리와 선고를 미뤄왔다. 이 사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늦추거나 대법원 판결의 결론을 뒤집는 방안을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논의하는 등 ‘재판거래’를 해온 정황이 드러나,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대법원이 뒤늦게야 이 사건을 지난 7월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선고를 서두른 것은, ‘재판거래’ 의혹에 따른 사법 불신이 깊어질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만일 한국 정부가 자국 사법부의 판단대로 배상금 청구를 위한 자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 환수를 시도한다면, 일본 정부는 높은 확률로 ICJ에 제소하려 들 것이다. 현재 한국 내에서는 개인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따라서 배상금 청구에 응하지 않는 일본 기업의 자산 환수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감정적인 호소가 먹혀들지 않고 법리적인 다툼에 외교력이 가미되는 정쟁의 장인 ICJ에서, 명분에서도 국력에서도 밀리고 선제 도발[까지 했으니 한국이 불리한 입장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스스로 개인청구권을 포기하는 요청을 하였다는 회의록의 존재와, 그 해당 사실을 2005년에 재확인하여 한국 정부가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독도 문제처럼 ICJ에서의 소송전을 원천 거부하거나, 남중국해 문제에서의 중국처럼 ICJ 판결에서 패소하더라도 무시하고 '제국주의자들의 담합' 따위의 국내정치용 프레임을 짜서 독자적인 주장을 계속한다는 선택지가 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일본 입장에서도 자국 내 한국 기업의 재산 환수와 같은 보복성 초강수가 선택지에 존재하며, ICJ에서의 소송전을 고려할 때야 자충수에 가까워 자제하고 있다지만 양국 간의 일대일 외교전이 될 경우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고 시행하려 들 것이다. 후자의 경우 역시 한국이 국제적으로 합의된 법과 규범을 따르지 않는 '불량 국가'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며, 선진 민주국가로서의 외교적인 입지를 크게 상실하여 향후 대일외교는 물론 주변국과의 관계 정립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덧붙여 국내에서도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한 이상 지금보다 훨씬 반발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한일 과거사 정책 전반에 대한 동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일본 입장에서도 고민은 남아 있다. 일본은 전후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메이킹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나 경제적 팽창에 집중하고 국제연합 상임이사국 등 외교적 영향력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때문에 주변국과의 과거사 갈등은 그 내용의 잔혹성[17]으로 보나 그것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찝찝한 사실로 보나 분명 덮고 싶은 치부이다. 게다가 좋든 싫든 일본의 옛 피해국 중 중국의 국력은 이미 자국을 넘어섰고, 한국과의 격차도 조금씩이나마 날이 갈수록 좁혀지는 이상, 과거사에 더 이상 발목잡혀서도 안 되지만 굳이 확전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일본의 속내이다. 때문에 일본은 한국의 시정을 요구하면서도 한국에 강경책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한국과 일본의 대립이 ICJ로 넘어가 판결을 받게 된다면, 그 판결이 일방의 퍼펙트 게임으로 끝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법리적 명분은 분명 일본에게 있으나, 도의적 명분은 한국에게 있고, ICJ는 일본의 손을 들어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는 현대 자유시장 원칙을 위반하는 부당한 행위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긴 하나, 그 와중에 분명 일본의 과거사 인식 문제를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18] 이렇게 일본의 치부가 공론화되는 것은 일본 입장에서도 결코 바라는 것이 아니며, 위안부 등 여전히 결론나지 않은 다른 과거사 분쟁에서도 불리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이나 일본이나 결국 확전을 원치 않는다는 속내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 더 밀고 나가봐야 이길 확률도 낮고 안 그래도 심각한 한일관계만 점점 더 심화될 것이며, 일본 입장에서는 대한관계를 아예 포기할 수도 없는 처지인데다 이겨도 이긴 게 아닌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이성적으로는 이 문제가 위안부 합의처럼 어느 정도의 타협안을 통해 정리되는 것이 합리적이고, 실제로도 문재인 정부나 스가 정부나 물밑에서 서서히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남은 문제는 위안부 합의가 나름대로 양국 관계의 합리적인 귀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모두에서 자국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고 맹비난받은 것처럼, 이 합의도 결국 '타협안'인 이상 양국의 매파들에게 까일 것이 분명한지라, 누가 어떤 방식으로 그 총대를 매고 험악해질 대로 험악해진 서로의 국민 여론을 설득하느냐 하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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